일요일 저녁은 일주일 중 가장 정서가 불안정한 시기다. 일상으로의 복귀가 1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그 느낌은 나를 매주 백일휴가 마지막날의 이등병이나 다름없게 만든다(물론 회사 그만둔 요즘은 좀 다르긴 해도). 일요일 저녁을 왜 황금시간대라고 부르는지는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. 미친 듯이 가속하는 초침에 올라탄 현실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TV가 보여주는 환상에 마음을 열고 빠질 수 있기 때문에. 그리고 나는 가수다는 그 환상을 200%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프로그램이었다. 음악과 가창에 관해 일가를 이룬 고수들의 향연과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의 긴장감은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아찔하여, 양심냉장고로부터 한 치도 발전하지 못한 편집도 덮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. 그래.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랬다. 별 가수 같지도 않은 게 가수랍시고 프로그램을 비난해도 뭐야 저 병신은 평소대로 놀고 앉았네라고 일축하고 TV를 볼 이유가 분명했단 말이다.
그런데 어제 MBC는 나에게 똥을 줬다.
정확히 말하자면 똥이 아니라 현실을. 하지만 어차피 현실은 똥이다.
7위 김건모의 이름이 불렸을 때, 나는 이 프로그램이 내가 원하는 환상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. 김건모의 무대에서 내가 느꼈던 식상함을 500명의 청중평가단도 함께 느꼈다는 발견은 차라리 카타르시스였다. 그가 원래 노래를 얼마나 잘 하는 사람이었는지,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. 다만 중요한 것은 5분이 채 안 되는 한 곡의 무대를 위해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 해 준비했는가이다. 그리고 그 노력은 가감없이 전달된다. 전달되지 못했다면? 그것은 100% 가창자의 책임이다. 내가 얼마나 열심히 잘 불렀는데 대중은 왜 몰라주냐는 투정은 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이다. 7위로 김건모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이야말로 이 하염없이 당연해야 할 원칙이 현실이 되는 환상이 완성된 지점이었다. 세상에, 정말로 환상적인 프로그램이다. 그리고 곧바로 제작진과 출연진이 입을 모아 외쳤다.
훼이크다 이 병신들아!
7위로 김건모가 발표된 후 TV가 보여준 것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싫은, 낯뜨거운 현실의 연속이었다. 결과에 집착하고 규칙을 무시하며 대의라는 명분으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깔아뭉개는 어른들의 모습은 바로 이 순간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닌가.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그 어떤 예능도, 심지어 다큐조차 2011년 3월 20일 방영된 나는 가수다 3회만큼 현실적이지 못하단 말이다. 1박 2일? 조까! 난 보트 위.. 아니, 난 가수다! 리얼 쩐다....
그런데 말이지, 문제는 내가 왜 일요일 저녁에 이 똥 같은 현실을 TV로 보고 앉았냐는 거다. 안그래도 내일이면 똥 같은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. 멀쩡하게 비싼 밥 먹고 내가 대체 왜? 그것도 3주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올린 환상이 완성되는 바로 그 지점에 과감히 모든 걸 허물어뜨리고 시청자를 현실로 내쫓다니. 진짜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.

정말 TV 보면서 이렇게 화가 나기도 처음이다.





